24 Aug 2018
Academic Gang
올해 초 학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주말을 이용해 파리에 들렀다. 런던과 다른 건축양식과 사람들이 마냥 신기했다. 특히 오랑주리 미술관이 정말 좋았다. 오랑주리 미술관 1층 수련 전시관에 들어서면 흰 타원형 벽에 모네의 수련 연작이 빙 둘러 전시되어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햇살과 어울려 매우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르누아르와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바지유, 모네가 어떻게 같이 작업했고, 인상주의를 발전시켰는가 하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풀고,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동료들을 만들고 조직해야 한다. 지식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업 기회를 만들고 후속 세대를 교육해야 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유럽에서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학회에 참가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PI와 같이 다니면서 내부자의 시선으로, 학생일 때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면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 관계의 중요성이다. 올해 초 PI가 런던 내 대학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10명 정도의 연구자들을 모아 워크숍을 조직했었다. 큰 격식이 없는 그룹미팅에 가까운 행사였다. 아주 세세한 기술까지 공개되었고, 각 그룹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까지 공유되었다. 이런 이타적인 모임의 성격 덕분에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 학연과 지연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런 식으로 같은 대학이나 연구실 거쳐 간 연구자들은 쉽게 뭉치게 된다. 무엇보다 같은 관점을 가지도록 훈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이론과 지식을 더 발전시켜 나가게 되고, 그런 연구자들과 지식이 모여 학풍이 된다. 단발적인 지식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 체계적으로 세워지게 된다.
다른 하나는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것도 연구자의 업무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학회에 참석하며 많은 기회를 얻었다. 내 아이디어를 홍보하고 시험할 수 있었다. 최신 연구 결과를 접하고, 연구자들을 만나서 협업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회를 조직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많은 연구자의 노력과 시간을 요구한다. 얼마 전 펠로우쉽 가상 인터뷰에 인터뷰어로 참가했다. 그때 체어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펠로우쉽을 선발할 때, 독립된 연구자의 자질로 연구 주제와 펀드의 독립성을 첫째로 보지만, 연구자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능력도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으로 학계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계가 연구자의 모임이라는 측면에서는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네트워크는 연구자의 본분이다. 그래서 국제학회에서 해외 연구자들의 끼리끼리 문화와 학연, 지연에 대한 비판은 일견 부당하다. 반대로 내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네트워크에 무임승차하고 있었다. 먼저 앞선 연구자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해야겠다. 특히 학생 시절 장기주 교수님이 설립에 많은 이바지를 한 아시안 전자구조학회를 통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학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토종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본다. 언젠가는 내가 국내 학회 조직에 기여하고, 훌륭한 학회가 한국에도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본다.
Til next time,
at 20:00